[최선주의 살며 사랑하며] 감사, 참감사
아이들이 아직 어릴 때, 여행이나 수련회를 떠나는 가방 안에 감사카드를 몇 장 챙겨 넣게 했다. 감사는 느낌이 아니라 행동이며 타이밍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감사 없이는 행복할 수 없고 진실한 믿음을 위해서도 감사는 필수적이다. 예수는 믿음을 더해달라는 제자들의 요청을 받았을 때 그 답으로 열명의 문둥병자 이야기를 하셨다. 문둥병은 전염성이 있어서 사회에서 추방되던 병이었다. 문둥병자는 제사장으로부터 병이 나았다는 증명서를 받아야만 정상생활로 복귀가 가능했으므로, 예수는 그들이 깨끗해졌다고 선포한 후 제사장에게 가서 치유된 것을 확인 받게 했다. 열명의 문둥병자가 예수가 한 말을 믿고 제사장에게 가는 도중에 병이 치유되었다. ‘순종이 믿음의 시작이다’는 메시지다. 열명의 문둥병자들의 피부가 깨끗해졌다고 할 때의 그리스어는 영어의 카타르시스의 어원인 카싸리조(katharizo)로 육신적인 병이 치료된 것을 의미한다. 열명의 문둥병자들 모두 감사를 느꼈을 터지만, 막상 예수께 돌아와서 감사를 표한 사람은 한 사람 뿐이었다. 예수는 그 한 사람에게 다른 아홉은 어디 있는가고 물은 후에 “일어나 가라, 너의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하였는데, 이 누가복음(17:19)절을 이 시대의 영적 지도자인 유진 피터슨 목사는 “너의 믿음이 너를 낫게 하고 너를 구원하였다”고 번역했다. 예수가 그 한 사람에게 믿음이 그를 구원하였다고 할 때의 동사는 소조(sozo)로 영적인 질병과 죽음을 치유한다는 의미다. 안팎이 다 치유되지 않고도 병은 나을 수 있다. 아홉명의 문둥병자들은 현 시대의 대부분의 교인들의 상태를 대변한다. 아홉명의 문둥병자들은 육신의 병을 치유 받는 것으로 그쳤지만, 감사하기 위해 예수께 돌아왔던 한 사람의 문둥병자는 육신의 치유와 더불어 영혼의 구원, 즉 영생을 약속받았다. 예수는 이 땅에서 단지 몇 년 더 살게 하는 육신의 질병치료가 아니라 영생을 위해서 온전해지도록 치유해주는 분이다. 참 감사는 행동으로 표현된다. 성경에서 감사는 선택사항이 아니고 명령이다. 하나님의 명령은 늘 행하는 사람 자신을 위해 주어진 내용이다. 정신건강 측면에서도 감사하는 사람이 더 행복한 사람이 되고, 감사하는 사람이 더 건강한 사람이 되며, 감사하는 사람이 더 온전한 사람이 된다. 마틴 루터가 참 예배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열명의 문둥병자 가운데 감사를 표현하러 돌아온 그 한 명이라고 답했다. 참된 예배를 잘 표현한 한 단어는 바로 감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이 마치 아홉명의 문둥병자들처럼 이 세상의 삶과 오직 보이는 문제에만 관심이 있어서 문제를 해결 받고 나아지면 자기를 도와준 사람이나 하나님께 감사함을 망각하고 원래의 상태로 돌아간다. 암이 치유 받고, 기적적인 문제 해결과 은혜 받은 경험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 아무런 태도의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 것을 목격해 왔다. 몸담았던 교회를 비방하고 불만하며 교회를 이리저리 전전하는 이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베풀고 어떻게 섬길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도 없는 채, 자기 맘에 드는 찬양대, 설교, 그리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가차없이 교회를 바꾼다. 감사보다는 짜증이 많고, 까탈스럽고, 무책임하다. 병명 진단을 받았대서 병이 치료되지는 않는 것처럼 교회를 다닌다고 신앙인은 아니다. 감사 결여의 상태는 거듭나지 않고 혼동된 사람들의 특징이다. 죄를 탕감 받고 구원 받은 것을 정말로 믿는다면, 교회, 목사, 교우 등 주와 관련된 모든 내용에 경박한 말을 삼가고, 감사가 허물을 덮는 태도일 때 정상적인 신앙인이다. 감사는 일회성 감정이 아니며 참감사라면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된 관계를 통해 지속될 것이다. [종려나무교회 목사, Ph.D www.palmtreechurch.org] 최선주최선주의 살며 사랑하며 감사 종려나무교회 목사 아홉명의 문둥병자들 감사 결여